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종영 이틀을 앞두고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2026년 5월 15일 방영된 11회 즉위식 장면에서 제후국 예법의 구류면류관과 '천세' 산호가 그대로 방송에 나갔고, 제작진과 주연배우 전원이 줄줄이 사과문을 내놓았다. 드라마는 자체 최고 시청률 13.8%로 막을 내렸지만, 논란은 종영 뒤에도 수습이 진행 중이다.
면류관 9줄이 담은 의미
면류관의 줄 수는 단순한 복식 디테일이 아니다. 동아시아 의례 체계에서 십이면류관은 황제, 구류면류관은 제후를 상징한다.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새 군주가 제후국 면류관을 쓰고, 신하들이 황제에게 바치는 '만세' 대신 제후국 산호인 '천세'를 외친다는 건, 허구의 대한민국이 어느 나라의 아래에 있다는 함의를 시청자에게 남긴다. 이 장면에 더해 극 중 인물들이 중국식 다도법을 사용하는 장면도 논란에 포함됐다.
유지원 작가는 논란 발생 5일 만인 5월 19일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즉위식에서 지적받은 구류면류관과 천세라고 산호하는 장면은 조선 의례를 현대에 적용하면서 고려했어야 할 역사적 맥락을 세심히 살피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고 밝혔다. 박준화 감독은 같은 날 종영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변명의 여지 없이 제작진 대표해서 가장 큰 책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과문이 이어진 닷새
논란이 확산되자 대응은 빠르게 이어졌다. 제작진은 5월 16일 종영일 당일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재방송·VOD·OTT 수정을 예고했다. 아이유와 변우석은 5월 18일 각자의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아이유는 "배우로서 더욱 신중하게 대본을 읽고 공부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썼다.
배우 이재원의 소속사는 같은 날 5월 21일로 예정됐던 종영 인터뷰 취소를 발표하며 "현재 작품을 둘러싼 여론과 상황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출연진 전원이 종영 인터뷰를 불참하게 됐다. 대본집 출판사 오팬하우스 스튜디오 오드리는 PDF 수정본을 배포하고 초판 구매자에게 실물 수정 스티커를 발송하기로 했다. 수정본에서 '천세'는 '만세'로, 복장 표기는 '십이장복·면류관'으로 교체됐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5월 17일 디즈니플러스에 공식 시정 서한을 발송했다. 5월 20일 기준 디즈니플러스의 한국어 자막·음성과 일본어 자막에서 '천세' 표현이 삭제됐다. 다만 일본어 음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완전한 시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국내 OTT 웨이브도 수정 영상으로 서비스 중임을 확인했다. 반크 박기태 단장은 "드라마 속 한 장면, 한 자막, 한 표현이 해외 시청자들에게 실제 한국의 역사와 문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짚었다.
고증 비용이 문제인가, 시스템이 문제인가
전문가들의 반응은 단순한 실수 차원을 넘어섰다.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SNS에서 "배우들 출연료는 몇 억을 아낌없이 지불하면서 역사 고증 비용은 몇 십만 원으로 왜 퉁치려 하냐"고 직격했다. 약 300억 원 규모로 알려진 제작비와의 대비가 선명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번 논란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대목은 MBC 방송사 자체가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작진, 연출, 작가, 배우 모두 사과했지만 방송사의 공식 성명은 나오지 않았고,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해외 유통 지원 관련 정부 지원금 회수 가능성을 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해당 지원금이 제작비가 아닌 해외 쇼케이스 지원 성격이어서 실제 환수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
시청률 13.8%가 남긴 질문
드라마는 첫 방송 시청률 7.8%에서 출발해 매회 자체 최고를 경신하며 최종회에서 전국 기준 13.8%, 수도권 기준 14.1%로 마쳤다. 상업적으로는 성공한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을 안고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K콘텐츠 산업에 던지는 질문이다.
웹소설 프리퀄에서도 5월 17일 '천세' 표현이 수정됐다. 드라마 본방, 재방, OTT, 대본집, 웹소설까지 수정 작업이 이어지는 범위는, 이 논란이 단발성 실수가 아니라 제작 전반의 구조적 공백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동시에 유통되는 지금, 고증 검수 체계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가 다음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