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에 올려야 한다고 믿어 온 규칙 대부분은 조선 예법서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 같은 배치 원칙은 1960~1980년대 언론이 지면에 소개하면서 굳어진 관행이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 공식 표준안에서 차례상 음식 9가지면 충분하고 전(煎)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했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노동과 비용 부담을 줄이려면, 먼저 무엇이 진짜 전통이고 무엇이 후대에 덧붙여진 관습인지 구분해야 한다.
차례와 제사, 같은 의식이 아니다
차례와 제사는 다른 의식이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전통 문헌 속 차례는 절기마다 간단히 지내는 의례로, 주과포(술·과일·포)에 시절 음식 한두 가지를 더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반면 기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지내는 별도의 의례로, 두 의식의 목적과 구성은 애초에 달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가례(家禮)》 등 유교 예법서에 '차례'라는 용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으며, 현대 차례상이 기제사 수준으로 풍성해진 것은 후대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퇴계 이황의 경우 술·밥·국·적·포·과일 등 5~6가지로 상차림을 꾸렸다는 기록이 문집에 남아 있다. 퇴계 문집에는 "음식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정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언급이 반복된다. 조선 중기 사계 김장생의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에도 "기름진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전을 부치는 관행이 전통 예법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홍동백서'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나
조선 예법의 기준으로 흔히 인용되는 《주례》·《주자가례》·《국조오례의》 어디에도 홍동백서·어동육서·조율이시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도 마찬가지다.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은 "격몽요결이 묘사하는 것은 기제사상이지 차례상이 아니며, 어동육서 같은 규칙은 해당 문헌에 없다"고 밝혔다. 어동육서에 대해서는 일부 가문이 중국 지리를 기준으로 동쪽 바다에 생선을, 서쪽 육지에 고기를 놓았다는 《송자대전》의 설명이 있을 뿐, 전 국민 공통 규범으로 명시된 예법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표현들이 언론 지면에 처음 등장한 시점은 1960년대다. 조선일보는 1960년 2월 5일자 제사상 기사에서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것은 서쪽"이라는 구체적 규범을 소개했다. 동아일보는 1978년 12월 28일자 기사에서 어동육서 등의 배치 규칙을 '가정의례준칙'과 함께 다루며 규범인 양 소개했다. 박광영 의례부장은 "홍동백서 등은 역사적 근거가 없지만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굳어진 규칙"이라고 평가했다.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도 "국조오례의, 주자가례 어디에도 없는 예법까지 정부와 언론의 과도한 권고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들어 이 표현들은 방송과 지면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 오늘날과 같은 '불문율'이 됐다. 정부는 1969년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해 봉사 대상을 2대조로 제한하고 간소화를 권고했지만, 음식 배치 규범은 오히려 더 세분화되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성균관 표준안이 권고하는 실제 상차림
2022년 9월 5일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공식 표준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차례상 음식은 9가지 정도면 충분하다. 둘째, 전류(기름에 부친 음식)는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셋째, 홍동백서·조율이시 같은 표현은 예법 관련 옛 문헌에 없으므로, 음식은 편하게 놓으면 된다.
성균관이 표준안 발표 전에 실시한 조사에서 일반 국민의 40.7%, 유림 관계자의 41.8%가 차례 개선 사항으로 '간소화'를 꼽았다. 또 일반 국민의 49.8%가 적정 음식 가짓수로 '5~10개'를 선택했다. 최영갑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표준안 발표가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수석연구위원은 "차례의 본래 의미에 맞게 의례용 제물은 줄이고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 중심으로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전통시장 기준 6~7인 차례상 비용은 23만 원대, 대형마트 기준으로는 27만 원대로 집계된다. 음식 수를 줄이면 비용과 준비 시간 모두 줄어드는 구조다.
차례상 준비 전 확인할 사항
차례상을 준비할 때 다음 사항을 먼저 점검하면 불필요한 수고를 줄일 수 있다. 배치 규칙(홍동백서·어동육서·조율이시)은 반드시 따라야 할 예법이 아니므로, 음식을 놓는 위치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전을 부치지 않아도 성균관 표준안에 어긋나지 않으며, 가문마다 내려오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므로 가족 간 사전 합의가 혼란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차례와 기제사의 구성이 왜 달라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전통 상차림 분석 자료와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표준안 전문을 비교해 보는 것이 출발점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