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현장이 2026년 들어 세 가지 구조 변화를 동시에 맞고 있다. 비급여 진료비가 10년 새 1.8배로 불어난 끝에 관리급여 제도가 본격 시행됐고, 국가건강검진은 '많이'에서 '제대로'로 패러다임을 바꿨으며, 지역 의사를 법으로 묶어두는 시대가 열렸다. 3461억 원 추경까지 투입됐지만, 분만기관 400곳·공중보건의 충원율 22%라는 현장 숫자는 재정 처방만으로 좁혀지지 않는 격차를 보여준다.
비급여가 '관리급여'로 바뀐다는 것의 의미
비급여 진료비는 2014년 11.2조 원에서 2023년 20.2조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 재정 흑자는 2023년 4.1조 원, 2024년 1.7조 원, 2025년 0.5조 원으로 줄었다. 2026년에는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정부가 꺼낸 카드가 관리급여다. 2026년 2월 19일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도수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방사선온열치료 3개 항목이 첫 대상이 됐다. 구조는 단순하다. 건강보험이 진료비의 5%를 부담하고 환자가 95%를 낸다. 그 대신 병원이 임의로 매기던 가격이 정부 표준 수가로 고정되고, 횟수 제한도 생긴다. 도수치료의 경우 연간 15회, 주 2회 이내 급여 인정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 중이다.
실손보험 지형도 달라졌다. 2026년 5월 6일 출시된 5세대 실손보험부터 도수치료는 비중증 비급여로 분류돼 보장 대상에서 빠졌다. 4세대 실손 신규 가입도 같은 날 종료됐다. 전국 기준 도수치료 1시간 평균 진료비는 약 10만 9000원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일부 과잉 우려가 있는 비급여를 적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건강검진은 '조기 발견'에서 '맞춤 관리'로
2026년 1월부터 국가건강검진도 전면 개편됐다. 56세와 66세 국민을 대상으로 폐기능 검사가 새로 들어갔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조기 발견이 목적이다. 60대 여성 대상 골다공증 검사 연령도 확대됐다.
변화의 방향은 수검 항목 수가 아니라 정밀도다. 보건복지부는 국가건강검진위원회를 통해 검진 목표를 '조기 발견' 중심에서 '맞춤형 관리'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공식화했다. 청년층 비만·질환 위험도 분석과 정신건강 평가도 강화됐다. 같은 나이, 같은 항목을 일괄 검사하던 방식에서 위험군을 세분화해 필요한 검사를 배분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재정 투입만으로는 좁혀지지 않는 격차
숫자들이 현장의 온도를 보여준다.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서울이 4.67명, 경북이 2.26명이다. 두 배 이상의 차이가 이미 구조화돼 있다. 2026년도 의과 공중보건의 신규 편입 인원은 98명인데, 복무 만료 인원은 450명이다. 충원율 22%다.
정부는 2026년 2월 '지역의사제' 법률을 제정해 비수도권 의대 정원의 10% 이상을 지역 의사로 선발하고 10년 의무 복무를 명문화했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도 연 1조 1000억 원 이상 규모로 추진 중이다. 5월에는 의료취약지 공백 해소를 위한 3461억 원 추경도 확정됐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은정 입법조사관은 "지방 의사 부족은 더 이상 개인의 사명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분만 현장은 더 절박하다. 2003년 1371곳이던 분만기관은 2025년 기준 약 400곳으로 줄었다. 전국 시·군·구의 40%가 분만실이 없는 지역이 됐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분만병원에 대한 법원의 7억 원대 환수·업무정지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며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을 범죄자처럼 몰아세우는 정책과 판결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회는 복지부가 2024년 분만병원 일반병상 의무비율을 50%에서 20%로 낮춘 전례를 들어 기존 기준 자체의 불합리성을 문제 삼았다.
법과 예산 다음, 남은 변수
정부는 법과 예산 두 축을 모두 움직였다. 지역의사제와 건보법 시행령 개정, 추경 3461억 원은 동시에 가동 중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필수·공공의료 위기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관련 대책도 함께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짚어둘 게 있다. 지역의사제로 선발된 첫 기수가 10년 의무 복무를 마치는 시점은 2040년대 초반이다. 분만실이 이미 사라진 지역, 충원율 22%로 돌아가는 공중보건의 체계, 그리고 계속 쌓이는 실손보험 누적 손실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구조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의료계와 학계에서 이어진다. 2027년 의대 정원 증원 단계와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실제 편성 여부가 이 구조의 다음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