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 100일이 지났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봉쇄는 전 세계 일일 원유 공급의 약 20%를 차단했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19.50달러까지 급등했다. 원유의 95% 이상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한국은 이번 충격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세계 에너지 동맥이 닫힌 경위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을 개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즉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맞섰다. 사흘 만에 A.P. 머스크와 하파크로이트 등 주요 해운사가 해협 운항을 전면 중단했고, 유조선 150척 이상이 해협 밖에 발이 묶였다. 3월 2일, 이란이 봉쇄를 공식 선언하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를 "현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시장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다.
봉쇄의 파장은 원유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 LNG 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의 가동도 멈췄다. 전문가들은 이 시설이 피격될 경우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본다. 하나증권 윤재성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평가했다.
수치로 본 충격의 규모
봉쇄 직후 유조선 통행량은 약 70% 줄었다. 브렌트유는 3월 9일 배럴당 119.50달러로 전쟁 발발 후 최고치를 찍었고, 4월 평균도 101.8달러를 유지했다. 두바이유는 개전 전후 49.8% 올랐고,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한 달 새 약 49% 급등했다. 세계은행은 4월 28일 보고서에서 2026년 에너지 가격이 24%, 전체 원자재 가격은 16%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우회로 문제도 심각하다. 유조선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하는데, 이 경로를 택하면 수송 기간이 수 주 늘어나고 비용은 50~80% 상승한다. 여기에 초대형 유조선의 전쟁위험 해상보험료가 선박 보험 가액의 0.125%에서 최대 0.4%로 뛰었다. 통과 때마다 25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붙는 셈이다. OPEC+는 하루 20만 6,000배럴 증산을 약속했으나, 봉쇄가 이어지는 한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10%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시나리오별 유가 전망을 세 단계로 제시했다. 조기 종전이 이뤄져도 배럴당 90달러 아래로는 회귀하지 못하고, 봉쇄 장기화 시 117달러, 에너지 시설 타격과 확전이 겹치면 174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KIEP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의 유가 급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구체적 피해
짚어둘 게 있다. 한국은 도입 원유의 95% 이상, LNG의 20% 이상을 중동에서 조달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공급선이 사실상 없다. 산업연구원은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한국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11.8% 상승하고, 전 산업 평균으로도 9.4%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석탄·석유제품의 생산비 상승폭은 최대 82.98%에 달한다는 계산도 나왔다.
소비자 물가는 이미 반응하고 있다. 석유류 급등 여파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였고, 4월엔 2.6%로 올라섰다. OECD는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2.1%에서 1.7%로 후퇴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하락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다. IMF도 중동발 고유가를 반영해 2026년 세계 성장률 전망을 2.5%로 낮춰 잡았다.
정부는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고, 3월 25일에는 총리 주재의 비상경제본부를 신설하며 원유 자원안보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 공공부문 승용차 5부제 의무화 등 에너지 절약 조치도 병행됐다. 산업통상자원부 문신학 차관은 "유가 및 해상 운송 리스크 확대 가능성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망과 남은 변수
긍정적인 신호가 전혀 없지는 않다. 5월 20일 HMM 소속 유조선 유니버설 위너호가 이란과의 협의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외교적 접촉이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다만 페르시아만에 한국 선박 25척이 여전히 잔류 중이고, KDI 정규철 경제전망실장은 "빠르게 종전될 수도 있고 더 길어질 수도 있어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 논의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산업연구원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재조명받고 있으나, 화석에너지 가격 상승이 재생에너지 투자 비용과 공급망 부담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박유미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하지 못한 채 재생에너지만 늘리는 것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급망 다변화와 전략 비축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6월 예정된 세계은행·IMF 중간 점검 회의가 다음 분기 전망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