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사 제도가 도입된 1994년 이후 30년간 방치된 면허 범위 문제가 2025년 9월부터 273일째 릴레이 집회로 터져나오고 있다. 같은 시기 정부는 2.6조 원 규모의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를 전면 개편했고, 91만 명 자격취득자를 보유한 간호조무사는 통합돌봄 인력 기준에서 여전히 제외된 채다. 세 갈등이 동시에 격화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의료직역 전반의 면허·역할 경계가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다.
30년이 만든 면허 사각지대
한약사 제도는 1994년 약사법 개정으로 탄생했다. 당시 정부는 '한방 의약분업'을 전제로 약사와 한약사를 별도 면허 체계로 분리했다. 그런데 그 의약분업이 30년이 지나도록 시행되지 않았다. 결과는 예측 가능했다. 한약사가 약국을 개설하고 약사를 고용해 전문의약품을 조제하거나,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사례가 다수 생겨났다. 행정청 입장에서도 약국 내부에서 면허별 업무를 분리해 감독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한약사회 백경환 부회장은 "정부는 30년 전 한방 의약분업을 약속하며 한약사를 만들었지만, 이후 면허 체계 관리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약사회가 정부에 요구하는 사항은 크게 네 가지다. 한약사의 면허 범위 외 일반의약품 판매 즉각 처벌, 한약사가 약사를 고용해 처방 조제하는 행위 금지 법안 처리, 약국과 한약국의 명확한 구분, 그리고 한방 의약분업이 시행되지 않을 경우 한약사 제도 자체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273일 집회와 멈춰 선 국회
2025년 9월 용산에서 시작한 릴레이 집회는 2026년 6월 17일 기준 273일차를 넘겼다. 전국 시도지부와 분회, 약학대학 동문회까지 합류해 청와대 앞에서 교대로 집회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집회 참석자 중 한 명은 현장에서 "한약사 문제는 특정 직역 간 이해관계가 아니라 의약품 안전관리와 면허제도 전반의 신뢰에 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회에는 2026년 1월 서영석 의원이 발의한 약사법 일부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한약사 개설 약국에서 약사를 고용해 전문의약품을 조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3월 이 법안에 대해 "입법 취지엔 공감하나 개인 면허를 근무지에 따라 제한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현재 한 해 130명 수준으로 신규 배출되는 한약사 문제가 사회적 논쟁으로 비화하지 않는 한, 복지부가 속도를 낼 유인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체검사 개편과 간호조무사 — 겹쳐진 갈등
한약사 논란과 별개로, 2025년 12월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전면 개편을 의결했다. 핵심은 위탁검사관리료 폐지와 분리청구 도입이다. 보건복지부 공인식 의료개혁추진단장은 "검체검사의 정확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위·수탁기관 역할에 맞는 보상체계를 재설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폐지로 확보되는 재원 약 2,400억 원은 진찰료 등 저보상 영역 인상에 활용될 예정이며, 2026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료계의 반응은 다르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은 "질 관리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획일적인 보상체계 개편이 의원급 의료기관과 필수의료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의료계 자체 분석에 따르면 내과 손실 규모는 약 2,600억 원, 산부인과는 1,132억 원에 달할 수 있다. 현재 검체검사 위·수탁 시장은 연간 3.4억 건, 2.6조 원 규모로, 전체 검체검사 건수의 20%, 금액의 35%를 차지한다. 일차의료기관에 실질적 타격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간호조무사 문제는 또 다른 층위에 있다. 2024년 말 기준 자격취득자는 91만 명이지만, 통합돌봄·재택의료 등 핵심 정책 설계에서 인력 기준 자체에서 빠지는 구조가 반복된다. 의원급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약 14만 명 중 43%, 즉 6만여 명이 최저임금 이하의 보상을 받고 있다. 5인 미만 의원에서는 그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면허·자격 체계 재편 논의가 빨라지는 와중에, 처우 개선 논의는 뒤처져 있다.
동시다발 갈등이 드러내는 것
세 갈등의 공통 구조는 비슷하다. 제도가 설계될 때 전제했던 조건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았고, 그 공백을 방치한 결과가 수십 년 후 한꺼번에 청구서로 돌아왔다. 한약사는 의약분업 미시행, 검체검사는 위탁 구조의 책임 불분명, 간호조무사는 역할 확대 없는 인력 활용이 각각의 뿌리다.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보건복지부는 간호사 진료지원업무 수행 규칙 입법을 전격 추진했고, 문신사법 제정으로 의사 독점 행위 일부를 비의료인에게 공식 개방했다. 의료직역의 경계선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한약사 교차고용 금지법안의 다음 국회 일정, 검체검사 개편의 2026년 하반기 시행 여부, 그리고 간호조무사의 통합돌봄 포함 여부가 이 갈등의 실질적 분기점이 된다. 세 사안 모두 연내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