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도 건강보험 수가협상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진행되는 가운데, 의료기기 제도 편입과 유통 규제 이슈까지 겹치며 의료정책 전반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5개 단체 한목소리, 밴드 확대 요구
2026년 5월 11일 시작된 2027년도 수가협상 1차 협상에서 대한개원의협의회는 밴드 규모를 1조5000억원으로 확대할 것을 건보공단에 공식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약사회 등 5개 공급자단체 모두가 추가소요재정 확대 필요성을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의원유형 수가협상단장)은 "1차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밴드폭을 늘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5월 20일 진행된 2차 협상에서는 대한약사회가 건강보험 재정 30조원 흑자를 근거로 밴드 확대 논리를 폈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상근부회장은 "보건의료계 희생만 요구하지 말고 정부 지원금을 정상화해 밴드를 최대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 국고지원 과소추계 누적액이 21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수치도 근거로 제시됐다. 오인석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5개 공급자 단체가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밴드의 추가분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기존 SGR 모형을 보완한 '개선 SGR' 모형을 재정운영위원회에 보고하고, 밴드 상한선 결정 권한을 소위원회에 위임한 상태다. 수가 변동 폭을 최소화하되 유형별 적용을 가능하게 한 구조 개선이 핵심이다. 다만 공급자단체 측은 이 틀 안에서는 요구 수준에 못 미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협상 타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커프리스 혈압계, 진료지침에 첫 이름 올리다
5월 25일 대한고혈압학회가 발표한 '고혈압 진료지침 2026'은 커프리스 혈압계를 임상 혈압 감시 장치로 공식 포함했다. 국내외 고혈압 진료지침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다. 지침은 고위험군·당뇨·만성콩팥병·심혈관질환 환자의 목표혈압을 130/80mmHg 미만으로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주목을 받은 기업은 스카이랩스다. 스카이랩스의 반지형 혈압계 '카트 비피 프로'는 전 세계 커프리스 제품 가운데 유럽고혈압학회(ESH) 2023 권고안의 성능 지표를 충족한 유일한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와 건강보험 수가 적용이 모두 이뤄졌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반지형 혈압계를 제도권 의료 현장에 도입해 치료·관리 프로세스에 적용 중인 국가가 됐다. 카트 비피 프로의 AI 혈압 측정 딥러닝 모델은 서울대병원 수술실에서 수집한 2만5000건 이상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됐다. 5월 20일 아시아·태평양 심장학회(APSC 2026)에서도 ESH 2023 권고안 충족 임상 데이터가 추가 발표됐다. 스카이랩스는 2026년 2월 반지형 혈압계 기반 병동 전용 혈압 모니터링 솔루션 '카트 온(CART ON)'을 출시하고, 대웅제약이 국내 독점 판매를 맡았다.
성능 검증 문제와 유통 규제, 남은 변수
커프리스 혈압계의 제도권 편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신중론도 있다.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 자신도 "검증되지 않은 기기를 치료에 활용하는 것은 환자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제품 자체보다 업계 전반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커프리스 기기는 종류가 많고 성능 편차도 크다. 진료지침이 특정 성능 기준을 명시한 배경에는 기기 선별 필요성이 깔려 있다.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는 건강기능식품 약국 전용 유통업체 네이처스팜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네이처스팜은 2017년 10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약국의 할인 판매를 막고 정가 판매를 강제했다. 바코드·RFID 추적과 미스터리 쇼퍼 업체까지 동원해 할인 약국을 적발했으며, 2018년 10월부터 2025년 5월 사이 최소 75개 약국이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조·공급업체가 거래처와의 거래관계를 이용해 판매가격을 통제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네이처스팜의 2024년 연간 매출은 242억1100만원 규모다. 이번 시정명령이 약국가의 건강기능식품 할인 경쟁 확산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후속 시장 반응에 달려 있다.
세 흐름의 공통점은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 제도 경계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수가협상의 다음 분기점은 법정 기한인 5월 말이다. 밴드 상한선 결정을 쥔 재정운영위 소위원회의 결론이 협상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