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2026년 5월 21일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근거로 IBM, 글로벌파운드리스, 디웨이브, 리게티, 인플렉션 등 9개 양자컴퓨팅 기업에 총 20억 1300만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단순 연구비 지원을 넘어 정부가 민간 기업의 소수 지분을 직접 확보하는 방식이 도입됐다는 점이 이번 발표의 핵심이다. 중국이 같은 시기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 신기록을 발표하면서 미중 간 기술 주도권 다툼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베팅 방식이 달라졌다
이번 투자 구조에서 주목할 대목은 지분 확보다. 글로벌파운드리스에 3억 7500만 달러가 배정됐고, 정부는 그 대가로 이 회사 지분 약 1%를 취득한다. 디웨이브 등 일부 스타트업도 정부에 지분을 이전하기로 했다. 반도체지원법이 본래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한 법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법적 근거를 양자컴퓨팅으로 확장했다는 것 자체가 정책 신호다.
IBM의 계획은 이 중에서도 규모가 크다. 정부 지원금 10억 달러에 자체 투자금 10억 달러를 더해 뉴욕주 올버니에 미국 최초의 양자 전용 반도체 공장 '앤더론(Anderon)'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는 이번 지원을 두고 "양자컴퓨팅 산업이 몇 년 안에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라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도 "미국은 양자 기술 혁신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고 성명에서 선언했다.
중국은 광자로, 엔비디아는 소프트웨어로
중국도 손을 놓고 있지 않다. 중국 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은 2026년 5월 25일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 원형기 '구장 4호'를 발표했다. 2020년 76개 광자를 활용한 구장 1호로 세계 두 번째 양자 우위를 달성한 뒤, 세대를 거듭하며 대규모 확장과 광자 손실 제어 기술을 고도화해 온 결과다. 2026년부터 시작된 제15차 5개년 계획에는 양자 기술이 6대 전략 산업 중 하나로 명시됐고, 내결함성 범용 양자컴퓨터와 산업 특화 양자컴퓨터 개발 모두를 국가 과제로 삼았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공공 부문이 양자 연구에 투자한 누적액은 약 19조 원(한화 환산)에 달한다.
엔비디아는 다른 방향에서 시장을 겨냥했다. 5월 11일 오픈소스 기반 양자컴퓨팅용 AI 모델 '이징(Ising)'을 공개하고, QPU와 GPU를 연결하는 '엔브이큐링크'와 통합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Q'를 함께 내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징이 양자컴퓨터의 운영체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드웨어 경쟁이 뜨거워지는 사이, 소프트웨어·생태계 레이어를 선점하겠다는 포석이다.
상용화는 진짜인가 — 시장 수치가 말하는 것
기업들의 실적은 투자 분위기와 따로 놀지 않는다. 디웨이브는 2026년 1분기 신규 수주 334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994% 증가한 수치다. 포춘 100대 기업 중 한 곳과는 1000만 달러 규모의 양자 클라우드 서비스 계약도 체결했다. 아이온큐는 2025 회계연도에 전년 대비 202% 매출 성장을 이뤘고, 2026년 가이던스로 2억 3500만 달러를 제시했다. 리게티 CEO 수보드 쿨카르니는 "양자컴퓨팅은 국가 안보와 경제 경쟁력, 산업 구조 전반에 영향을 줄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숫자들을 곧바로 '상용화 완성'으로 읽기는 이르다. 현재 양자컴퓨팅 기업들의 매출 대부분은 클라우드 접속 계약과 R&D 용역에서 나온다. 완전한 내결함성 양자컴퓨터는 아직 실험실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IBM이 공식 발표한 2040년까지 최대 8500억 달러의 경제 가치 창출 전망도 15년 이상 앞의 그림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들은 2034년 양자컴퓨팅 시장 규모를 약 183억 달러로 추산하는데, 이 수치 역시 하드웨어·소프트웨어·클라우드를 합산한 넓은 정의다. 기술이 언제 '범용' 단계에 진입하느냐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국의 선택지 — 미중 사이에서 독자 경로
한국은 미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보다 독자 공급망 구축을 선택하고 있다. 2026년 4월 한-불 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과기정통부와 프랑스 고등교육연구우주부 장관은 AI·양자 분야에서 양국이 "기술 패권 시대의 핵심 파트너"임을 공동으로 확인했다. KAIST와 프랑스 양자컴퓨팅 기업 콴델라(Quandela)는 3년 협력을 바탕으로 KAIST 국가양자팹 인프라를 활용한 하드웨어 제조·소부장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은 연간 20% 안팎의 성장률로 확대되고 있으며, 한국 시장도 같은 궤적으로 2031년 약 32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본다. 다음 분기점은 IBM 앤더론 공장 착공 일정과 중국의 구장 시리즈 추가 성과 발표다. 유럽 QuantERA 프로그램에 대한 한국의 참여 여부도 하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