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6년 1분기 나란히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률 72%로 엔비디아(65.0%)와 TSMC(58.1%)를 웃돌았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56.1% 급증했다. AI 인프라 수요가 메모리 가격을 밀어 올린 결과이며, HBM4 양산 경쟁과 화웨이의 기술 선언이 다음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메모리 가격을 뒤흔든 AI 수요
2026년 1분기 DRAM 고정거래가격은 전 분기 대비 90~95% 상승했다. 낸드플래시도 55~60% 올랐다. 트렌드포스(TrendForce) 집계 기준으로, 이 같은 폭등은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AI 학습용 서버 인프라를 일제히 확장하면서 빚어졌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구간이 분기 내내 이어진 셈이다.
가격 급등의 수혜는 고스란히 양사 실적으로 흘러들었다. SK하이닉스는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98%, 영업이익은 405% 올랐다. 삼성전자는 매출 133조8700억원, 영업이익 57조2300억원으로 국내 기업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썼다. 박순철 삼성전자 CFO 부사장은 "AI 기술 혁신과 선제적 시장 대응으로 역대 최대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새 이정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HBM4 — 누가 먼저, 얼마나 빨리
삼성전자는 2026년 2월 업계 최초로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양산 출하를 시작했다. 1c(10나노 6세대) D램 공정과 4나노 파운드리 로직 다이를 적용해 최대 11.7Gbps 속도를 구현했다. 양산 타이밍에서 한 발 앞선 셈이다.
SK하이닉스는 같은 분기 세계 최초로 1c 공정 기반 LPDDR6 D램 개발을 완료했다. 기존 LPDDR5X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는 33%, 전력 효율은 20% 이상 개선된 수치다. 3월에는 HBM4 최종 샘플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품질 테스트 통과 시 양산 전환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 주요 분석 기관들은 2026년 HBM4 시장 점유율을 SK하이닉스 54~55%, 삼성전자 28~29%, 마이크론 17~18%로 전망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HBM, 고용량 서버 D램, 기업용 eSSD 등 AI 메모리 모든 분야에서 독과점적 공급 지위를 지속하며 사실상 적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양사의 지배력은 뚜렷하다. 1분기 삼성전자 낸드 매출은 135억1000만달러로 글로벌 1위, SK하이닉스는 75억3000만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합산 점유율은 49.2%다. 두 기업은 2026년 낸드 부문에서 각각 약 40조원, 약 30조원의 영업이익이 기대된다. 2023년 각각 11조원, 8조원의 낸드 적자를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화웨이 변수, 얼마나 현실적인가
여기서 짚어둘 게 있다. 한국 두 기업의 독주를 위협할 변수가 두 방향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메모리 기업 창신메모리(CXMT)는 2026년 생산 라인의 20%를 HBM 라인으로 전환하고 HBM3 양산을 추진했다. 다만 발열 등 기술적 난항으로 상반기 목표가 지연됐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HBM 기술 격차는 2~3세대로 추산된다. 단기간에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다.
화웨이는 2026년 5월 상하이에서 열린 IEEE 국제 회로 및 시스템 심포지엄에서 '타우 스케일링 법칙(Tau Scaling Law)'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1.4나노미터(nm) 공정 노드와 동등한 트랜지스터 밀도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허팅보 화웨이 반도체 사업부 사장은 "타우 스케일링 법칙이 반도체 및 전자 시스템 개발의 다음 단계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6년간 이 법칙을 활용해 381개의 칩을 설계·양산했다고 덧붙였다. 목표 제시와 실제 양산 사이의 거리는 아직 크지만, 독자적 스케일링 경로를 공개했다는 점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신호다.
재무 체력과 다음 마일스톤
SK하이닉스의 1분기 현금성 자산은 전분기 대비 19.4조원 증가한 54.3조원이다. 차입금은 2.9조원 줄어 19.3조원, 순현금은 35조원에 달한다. 김우현 SK하이닉스 CFO는 "수요 가시성을 고려한 투자를 통해 공급 안정성과 재무 건전성을 함께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일부 고객과 3~5년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했다고 공개해 수요 기반을 장기적으로 고정하는 전략을 택했다.
다음 변곡점은 SK하이닉스의 HBM4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 여부와 삼성전자의 HBM4 수율 안정화 속도다. 화웨이의 타우 스케일링 법칙이 2031년 목표에 얼마나 근접하는지도 중장기 변수로 남는다.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지속되는 한, 메모리 시장의 무게중심은 당분간 한국 두 기업에 쏠릴 공산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