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칩스법 재원으로 IBM 등 양자컴퓨팅 기업 9곳에 총 20억 1,300만 달러(약 3조 원)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관련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IBM은 12% 이상 올랐고, 디웨이브와 리게티·인플렉션은 30%를 넘어섰다. 맥킨지 보고서가 2025년 글로벌 양자 투자가 126억 달러로 전년의 10배 이상 불어났다고 확인한 직후 나온 정부 지원이라는 점에서, 시장은 이번 발표를 단순 보조금이 아닌 산업 전환점의 신호로 읽고 있다.
칩스법이 양자컴퓨팅을 겨냥한 까닭
칩스법은 본래 반도체 제조 시설 유치와 공급망 안보를 위해 설계됐다. 이번에 그 재원이 양자컴퓨팅 분야로 확장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국 상무부는 2026년 5월 21일(현지시간) 9개 기업과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하면서,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소수 지분도 직접 취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이번 투자는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의 양자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 수혜 기업은 IBM으로 정부 지원금 10억 달러에 자체 자금 10억 달러를 더해 뉴욕주 올버니에 미국 최초의 양자 전용 반도체 공장 '앤더론(Anderon)'을 세울 계획이다. 디웨이브, 리게티컴퓨팅, 인플렉션, 사이퀀텀, 아톰컴퓨팅, 퀀티넘,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7개사도 수혜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투자 규모·매출 모두 '임계점' 넘어섰다
맥킨지앤드컴퍼니의 '양자 기술 모니터 2026' 보고서는 2025년 양자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가 126억 달러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2025년에는 양자컴퓨팅 기업들의 글로벌 합산 매출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맥킨지 파트너 헤닝 졸러는 "2026년은 양자컴퓨팅이 기술적 약속에서 전략적 경영 문제로 전환되는 해"라고 평가했다.
아이온큐(IonQ)는 이 흐름을 숫자로 뒷받침한다. 2025년 매출은 전년 대비 202% 늘어난 약 1억 3,0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6년 가이던스는 2억 2,500만~2억 4,500만 달러다. 허니웰 자회사 퀀티넘은 약 2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미국 SEC에 나스닥 상장(티커 'QNT')을 위한 S-1 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 퀀티넘은 이온 트랩 기술 기반으로 98개의 물리적 큐비트와 48개의 논리적 큐비트를 갖춘 Helios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IBM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는 "양자컴퓨팅 산업이 몇 년 안에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라고 말했으며, 2030년대 중반에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고수익 사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의 대응 — 하드웨어와 보안 두 갈래
국내에서도 움직임이 빠르다. 양자컴퓨팅 기업 노르마는 네덜란드 정부 산하 응용과학연구기관 TNO와 스핀 큐비트 개발 협력에 나섰다. 목표는 2년 내 아시아 최초 상용 모델 출시다. 정현철 노르마 대표는 "스핀 큐비트는 기존 반도체 산업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가장 현실적인 접근 방식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보안 쪽도 분주하다. 지니언스는 양자내성암호(PQC)와 키 관리 시스템(KMS)을 결합한 '양자 보안 게이트웨이' 핵심 기술이 2026년 5월 26일 기준 최종 검증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도 2026년 PQC 시범전환 사업으로 통신·국방·금융·우주·교통 5개 분야에 총 45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2030년 글로벌 PQC 시장 규모는 34억 2,000만 달러(약 4조 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열 경계론도 나온다
다만 짚어둘 게 있다. 퀀티넘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520만 달러에 불과하고, 순손실은 1억 3,660만 달러에 달한다. 목표 기업가치 200억 달러와의 격차가 크다. 양자컴퓨팅은 여전히 오류율 제어, 큐비트 안정성, 상온 운용 등 여러 기술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상용화 타임라인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설정됐다고 본다.
주가 반응도 기대와 실적 사이의 간극을 반영한다. 이번 발표 이후 코스닥에서 엑스게이트, 아이씨티케이 등이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상당수는 직접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테마 수혜 종목이다. 실제 기술 역량과 주가 상승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이 체크해야 할 변수다.
미국 정부의 다음 단계는 LOI에서 확정 계약으로의 전환이다. IBM 앤더론 공장의 착공 시기, 퀀티넘의 나스닥 상장 공모가 확정, KISA PQC 시범사업 결과 발표 등이 하반기 주요 분기점으로 꼽힌다. 맥킨지가 '전략적 경영 문제'라고 표현한 전환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지가 이 산업의 신뢰도를 결정할 핵심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