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100일을 갓 넘긴 2026년 6월 15일, 울산지방노동위원회가 현대차 하청노조 10곳의 원청 교섭 요구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같은 날 중앙노동위원회도 한화오션의 급식·시설관리 하청업체 웰리브지회에 대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교섭 범위는 생산직을 넘어 구내식당·보안직·시설관리까지 확대됐다. 협력사 8,500여 곳을 둔 현대차를 기점으로 제조업 전반으로 유사 분쟁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바꾼 교섭 구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2025년 9월 9일 관보에 공포되어 2026년 3월 10일 본격 시행됐다. 핵심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단체교섭 의무를 질 수 있도록 사용자의 범위를 넓힌 데 있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 직전인 2월 27일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을 발간하며 원·하청 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별도로 거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시행 첫날부터 움직임은 거셌다. 노조들은 3월 10일 하루에만 97개 건설사에 교섭을 요구했고, 한 달 뒤인 4월 10일 기준으로 하청노조 1,011곳이 교섭요구를 접수했다. 대형 건설사 중에서는 포스코이앤씨(4월 9일, 경북지노위)와 SK에코플랜트(4월 17일, 서울지노위)가 잇따라 사용자성을 인정받으면서 제조·건설업을 가리지 않고 판정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현대차·한화오션 판정의 무게
이번 울산지노위 판정이 주목받는 건 '완성차 업계 최초'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교섭 요구에 참여한 하청지회 10곳, 조합원 수 1,675명 가운데에는 생산직뿐 아니라 구내식당 조리직, 보안직, 판매대리점 직군까지 포함됐다. 그동안 원청 교섭 논의는 생산라인에 집중됐는데, 이번 판정은 비생산 지원업무 영역에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신호를 처음으로 공식화한 셈이다.
중노위의 한화오션-웰리브지회 판정도 같은 맥락이다. 중노위는 조리실·세탁실·통근버스 등 작업환경 개선이 한화오션의 협조 없이는 이행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리적 공간과 설비를 원청이 통제하는 구조라면, 직접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교섭 의무가 생긴다는 논리가 복수의 노동위원회에서 동시에 확인된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판정 직후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위아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전반에도 원청 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최명식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은 "14년째 처우는 단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영계의 반론과 제도적 논란
경영계는 이번 판정이 논리적 모순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을 위해 원청이 안전기준을 만들고 작업환경을 관리한 행위가 역으로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구내식당 등은 고용노동부 해석지침상 원청의 '구조적 통제'에 해당하지 않는 대표 사례로 제시돼 있었다며 반발했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와 노동위원회가 교섭 매뉴얼에 따라 명확한 기준을 갖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나 불법 쟁의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현행 절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공공운수노조 김선종 부위원장은 "현재의 제도는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성을 판단해야만 교섭이 가능한 사실상의 '교섭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원청 교섭요구 접수가 500곳을 넘겼음에도 원청의 응답 비율이 10%에 그친다고 밝히며, 2026년 7월 1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는 파장
재계가 가장 경계하는 건 현대차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차의 국내 협력사는 8,500여 곳으로 추산된다. 조선·철강·전자처럼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일반화된 업종에서도 유사한 교섭 요구와 분쟁이 잇따를 수 있다. 교섭 의제의 범위가 안전·임금을 넘어 작업환경 전반으로 넓어질 경우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음 분기점은 7월 15일로 예고된 민주노총 총파업이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쌓이는 속도가 원청의 실제 교섭 응답을 앞지르는 현재 구도에서, 법 시행의 실효성이 어느 수준에서 안착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매뉴얼을 통해 제시한 기준이 개별 판정 사례를 충분히 수렴하는지도 하반기 중 점검이 필요한 대목이다.




